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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과사전_ 백범 김구편

by sum-in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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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정의

독립운동가란 다른 국가나 정부의 지배를 받는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자유와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말한다.

역사를 통틀어 독립운동의 사례는 많았으며, 종종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자유를 위험에 빠뜨린 사람을 말한다.

백범 김구 일생

백범 김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지도자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안창호, 여운형 등과 함께 지도자 출신 중 최순위권에 손꼽히는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목 백운방 텃골에서 부 김순영, 모 곽낙원의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어려웠다.

어려운 형편에도 글공부를 했지만 과거 시험에 붙지 못하고 떨어졌고,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 자체가 폐지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총명한 학생이었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나 장학금을 받으며 일본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백범 김구의 원래 이름은 김창암으로, 1893년 동학에 입교하면서 김창수로 바꾸었고 1912년 김구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 있는 동안 한국독립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의 지식인계와 정치계를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촉진하고자 하는 대한국민회 창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1910년 일본은 한국을 공식적으로 병합했다.

김구는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해 솔직한 비판가가 되었으며, 활동가로 여러 번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한국의 독립을 옹호하고 한 민족의 권리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김구는 일본의 한국 점령에 맞서 싸운 게릴라부대였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고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의 지도력과 군사 기술은 광범위한 존경을 받기도 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김구는 한국으로 돌아와 일제강점기에 망명정부를 역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하여 정치에 참여했다.

1948년 김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는 한국에서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 수십 년간의 식민 통치와 전쟁 이후에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통력 직은 1949년 향년 72세에 친공산주의자 총잡이에게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경교장에서 암살당하면서 단명되었다.

백범 김구는 한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선구적인 지도자 였으며, 그의 리더십, 저술, 유산은 오늘날에 한국인들과 세계적인 사람들에게도 계속 영감을 주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그의 삶과 정치 경력을 기록한 '김구 회고록'은 한국 근대사와 독립,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김구의 유산은 오늘날에 한국에서 기념되고 있으며, 그는 국가적 영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백범 김구 어록

  •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셔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소련식 민주주의가 좋다고 해도, 공산 독재정권을 세우는 것은 그르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독점 자본주의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진실로 국제적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남북의 친선을 촉진하면서, 우리 삼천만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 스스로가 잘 살 수 있게 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자주독립의 조국을 원할 뿐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가 강력히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관련 작품

  • 아아 백범 김구 선생 (1960년) : 전창근 감독 작품으로, 감독 본인이 직접 백범 역을 맡았으며 김희조 작곡가가 음악제작에 참여했다. 
  • 광복 20년과 백범 김구 (1973년) : 조긍하 감독이 각본까지 맡은 작품으로, 원작은 TBC 장편 라디오 다큐멘터리극 <광복 20년>의 전반부이며 이영신 작가도 참여했다. (백범-배우 박암), (이승만-일반인 최용한)
  • 백범일지(1989년) : MBC 특집드라마로 각본 김기팔, 연출 고석만의 작품이며, 한국드라마 사상 최초로 중국 로케이션 촬영을 했던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 김구(1995년) : 광복 50주년 기념 KBS 기획드라마이다.
  • 백범김구와 상해임시정부(1999년) : 이동훈 작곡가가 만든 오페라로, 대본은 이종헌, 공동대본 겸 연출은 장수동, 합창지휘는 김진택 등이 각각 맡았다고 한다.
  • 백범 김구(2010년) : 임진택 명창이 만든 판소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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